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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어른 66회 - 설민석 식史를 합시다. 선사시대편

역사를 읽어주는 남자!
22년째 한국사를 강의하고 있는 설민석.

설민석의 2016년의 키워드는 바로 '초심'
2017년의 키워드 바로바로 '전화위복'
역사 속 정유년은 어려운 세월들이 많았다.
57년 정유년 6.25 이후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
180년 전 세도정치 시기의 정유년.
240년 전에는 정조 정유년에 자객이 침투했던 '존현각' 사건이 일어났던 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유년인 올 한 해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420년 전의 정유년을 본받았으면 좋겠다.
명량대첩이 일어났던 해.
정유재란. 1597 기적의 해.
힘들더라도 국민이 하나로 단결하면 이 어려움을 기회로 승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전화위복이라는 키워드를 가져왔다고 했다.

강의와 강연의 차이도 알려주셨다.
강의는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해주는 것.
강연은 인생이라는 시험을 준비하는 우리 어른들에게 의식을 심어주는 것.
그런데 강의와 강연을 다 하겠다고 선포했다.
우리 어른들에게 지식과 의식을 둘 다 심어주기 위해 '식사를 합시다.'라는 제목으로 돌아왔다.
"저와 함께 맛있는 역사 한 끼 하시죠!"
본격적으로 그와 식사를 해봅시다.
   
오늘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바로 선사시대다.
국사 교과서에도 첫 파트로 나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익숙하지만,
다 안다고 착각하며 무심히 그냥 넘어가 버리는 파트이기도 한 바로 그 선사시대.
너무 쉽다고, 지겹다고 생각하며 지나쳐버렸던 선사시대에 대해 아직도 너무나 모르는구나를
알게 해준 오늘의 역사 이야기. 그리고 선사시대를 통해 가지게 된 자부심. 감동.

우리에게 너무 먼 선사시대. 그래서 우리는 선사시대는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선사시대는 다른 역사들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들의 이야기다.
우리가 역사를 기록으로 남긴 시대는 2천여 년 전이다.
선사시대는 역사시대보다 앞선 시대. 약 8천여 년 전의 일들.
기록이 없으니 짐작할 수밖에 없는 시대. 그래서 느낌상 더 멀게 느껴질 뿐이다.
구석기는 우리의 조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 시기는 빙하기로 중국, 한국, 일본이 연결되어 있었다.
이동을 하며 생활했기 때문에 중국에서 일본까지 왔다갔다하며 생활을 하기 때문에 우리의 조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빙하기가 끝나고 따뜻해지는 간빙기가 찾아오면서부터 오늘날의 지도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 시대가 바로 신석기 시대다. 지금으로부터 만 년 전.
신석기부터 청동기 시대의 한반도에 잔류한 인류를 우리의 조상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구석기 유적의 발굴 시기는 언제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일제 강점기 시대였다.
유적 발견에 대한 기쁨도 잠시. 처지가 난처해진 일본은 우리나라의 구석기 유물을 인정하지 않는다.
중국의 고사처럼. 진나라 시절 무소불위 권력자 환관 '조고'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자신의 권세를 확인하고자 사슴을 한 마리 잡아서 말이라 지칭한다. "이 말 훌륭하지? 이거 명마야." 말이 아니라 사슴이라고 진실을 말한 자는 죽여버리고말이라고 하는 아첨하는 사람들은 다 곁에 두었다.
이 고사를 한자성어로 '지록위마'라고 한다.
자신들의 논리와 맞지 않는다고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의 태도. 바로 고사의 조고와 똑같은 행위였다.
하지만 조고는 새로운 황제에게 가혹한 죽음을 맞이하고, 일본은 비참하게 패망한다.
현실을 부정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행위는 역사가 반드시 심판한다는 대목이다.

우리는 독립 후에야 역사를 뒤집는 놀라운 발견들을 하게 된다.
바로 그 첫 번째가 '주먹도끼'다.
그냥 돌 같지만 그 시대에는 오늘날의 맥가이버 칼과 비슷한 발명품이었을 것이다.
당시 기술의 집합체. 하지만 주먹도끼의 주 발견지는 유럽 아프리카 서남아시아였다.
동아시아는? 찍개라고 불리는 자갈돌, 짱돌같이 생긴 주먹도끼보다 못한 돌이 발견됐을 뿐이었다.
여기서 유럽의 우월주의가 생기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아주 우연한 계기로 역사가 뒤바뀌게 된다.
미군 병사 그뤡 보웬. 당시 한국 상미라는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다가 우연히 돌을 하나 주웠는데
아무래도 모양이 좀 이상하여 정밀검사를 요청한다.
그의 전공은 바로 고고학이었다. 역사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다른 사람은 그냥 돌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그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발견된 '전곡리 주먹도끼'
이 위대한 발견으로 역사학계는 발칵 뒤집힌다.
우리도 유럽에 못지않은 기술력을 가졌다는 증거물로써.
그 증거물이 동아시아 중에서도 바로 한반도에!
듣는 나도 감동과 함께 우쭐해지는 기분까지 들었다.
그런데!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처럼 마음이 편치 않았던 일본.
일본엔 없는 구석기 유물이 한국에 있다니!
그것에 분노한 1인 '후지무라 신이치' 다니던 회사까지 때려치우고 일본의 구석기 시대
유물을 찾으러 돌아다닌다. 신기하게도 그가 가는 곳마다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발견된다.
신의 손이라 불리며 일본의 영웅으로 추대되고, 교과서에도 실린다.
하지만 이상하게 생각한 그를 양심적인 카메라들이 잡아낸다.
그는 유물을 땅을 파서 먼저 묻어놓고, 마치 발굴하는 것처럼 꾸민 것이다.
역사상 가장 쪽팔린 희대의 사기극.
이 사건으로 일본 고고학자들은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선사시대 역사는 현 국가의 자존심에 영향을 미칠 정도다.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 중인 것이다.

김흥수 선생님! 이 분은 그 당시 70년대 석회석 광산을 운영 중이셨다.
80년대 초반 그는 청원에서 광산을 발굴하다 5-6세 정도 되는 아이의 완벽한 유골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것을 신고하기까지 3일간 고민을 한다.
왜 고민을 했을까?
그 이유는 유물이 발견되면 문화재 지정구역으로 보호되기 때문에 광산의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3일 만에 결심한다.
"내가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역사를 부정할 수 있진 않지 않은가."

그 신고 덕분에 우리는 구석기 시대의 소중한 유물을 얻을 수 있었다.
역사를 지킨 작은 영웅. 하지만 그에게 돌아가는 것은 감사패 하나였다.
그리고 그에게 그 고마운 마음을 보답하고자 그의 이름을 따
'흥수 아이'라고 유물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아무런 금전적 보상 없이 결국 문을 닫아야 했던 광산. 그 뒤로 그는 보험 일을 하게 된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우는 일만이 애국이 아니다.
바로 우리의 역사를 소중히 하고, 나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그것이 바로 애국이다.
김흥수 선생님처럼 말이다. 별것 아닌 일 같지만 실로 대단한 애국이다.
자신의 생계가 달려있는데 저런 결정을 누가 쉽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국사 교과서에서 아무 생각 없이 지식으로만 구석기시대는 흥수 아이라고 외웠던 그 유물에
이런 깊은 뜻이 담겨있고, 얼마나 감사한 유물인지 새롭게 알게 되었다.
내가 모를 수도 있었던 유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더 소중하게만 느껴진다.
흥수 아이는 앞으로도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다.

또 이 말을 하면서 설민석 선생님의 눈가에도 눈물이 조금 보이는 듯했다.
이게 바로 그의 강연의 매력이다.
그의 감동이 듣는 이에게까지 전해지는 마법.
그래서 설민석의 강연에 모두들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2015년 인터뷰 내용이다. 자신의 생계는 위협받았을지언정 유물을 지켜낸 것에 대한 자부심으로 살고 계신다고 한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구석기 유물에서 이런 감동을 받을 줄이야..
우리 유산을 지켜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자 그럼 신석기시대부터 우리의 시작이라 불리는 고조선이 생기기까지 어떤 역사가 있었을까?

신석기는 돌을 갈아서 썼기 때문에 간석기라고 불렸고,
농사를 시작한 이유는 정확히는 모로지만 밭농사와 같은 초기 농사가 시작되었다.
농사는 곧 정착생활을 하게 한다. 그러면서 목축 활동도 이때부터 시작된다.
가족의 개념도 이때부터 생기게 된다. 씨족 사회라고 불리는 이유.
씨족은 부족으로, 부족은 부족국가로 탄생한다.
그로 인해 원시 신앙이 생겨난다.
농경 생활의 시작으로 날씨에 대한 걱정이 많아지게 된 것이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샤머니즘, 애미니즘, 토테미즘 이런 것들.
그리고 재배작물을 보관할 토기가 필요해진다. 바로 '빗살무늬토기'
신석기시대가 점점 발전해서 드디어 청동을 쓰게 된다. 그게 바로 청동기시대.
이때부터 세상을 바꾸게 한 벼농사가 시작된다.
벼는 단위 면적에 비해 많은 수확량을 얻을 수 있는 작물이다
그 결과로 잉여농산물이 생기면서 사유재산이 처음으로 생기게 된다.
이때부터 인간의 욕망은 꿈틀대기 시작하면서,
사유재산 때문에 전쟁이 발생한다.
이긴 사람은 진 사람을 지배하고 진 사람은 지배를 당한다. 계급이 생긴 것이다.
계급의 시작을 알려주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 '고인돌'
그 고인돌의 절반가량이 한반도에 존재한다고 한다.
이것 또한 자랑스러운 우리의 유산이다.
청동기부터 철기시대까지를 우리는 고조선이라고 부른다.
고조선의 건국이념은 '홍익인간'
널리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한다.
휴머니티.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애민정신이다.
우리는 최초 국가 건국부터 애민정신이 있었고, 그 애민정신을 본받아 세종은 한글을 창제했다.

우리도 우리 민족의 뿌리인 애민정신을 가지고 인류평화를 위해 애써야 하지 않을까?

단군왕검. 이름이 아닌 직책의 이름이다.
2천여 년 이어진 고조선을 다스려온 단군왕검이라는 직책
아직도 고조선에 관한 이야기는 신화다 vs 실제다 아직도 의견이 다양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군에 대한 우리나라의 처음 기록이 일연의 삼국유사에서 단군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바로 원나라의 간섭기에 우리 민족의 자주 의식을 표출하기 위해.
이처럼 단군은 자주의 아이콘인 것이다.
세종은 단군사당을 지어서 단군에게 제사를 지냈던 왕이다.
또한 우리나라가 을사늑약 체결로 인해 외교권을 박탈당했던 그 시절에
나철 선생은 1909년 단군교라는 종교를 만들어서 단군을 부활시킨다.
유명한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 대부분이 대종교를 믿는 신도들이었다.
우리나라가 힘들 때마다 우리 민족의 구심점을 만들어준 단군.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우리의 뿌리.
우리 삶 곳곳에 남아있는 단군의 흔적들도 있다.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장소인 '참성단'
우리는 전국체전 때마다 어김없이 이곳에 성화를 하며 체전의 시작을 알린다.
그리고 우리가 기념일로 지정한 10월 3일 개천절!
하늘문이 열린 날. 고조선이 시작된 날을 기념하는 날을 우리는 아직도 기억하고 기념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단군을 알게 모르게 뿌리로써 기억하고 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단군.
그 단군의 정신으로 우리에게 닥친 이 위기를 헤쳐나가야 하지 않을까?

2탄은 삼국시대 편이라고 한다. 다음 주도 숨은 영웅이 누구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역사를 읽어주는 남자 설민석 선생님.
본인을 통해 사람들에게 역사에 관심이 생기게 해주는 분.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고 힘을 모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분.
설민석 선생님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가 아닐까 생각해본다.